이토 잇토사이

  • 전국시대 말기 한 소년이 어둠을 틈타 조각배를 타고서 이즈(伊豆)의 거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나이는 겨우 14살. 하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험상궂은 얼굴에 덥수룩한 머리, 마치 야차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상대하기에 바다는 만만치 않았다. 풍랑을 만난 것이다. 어설픈 조각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소년도 무시무시한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소년은 나무판자를 부여잡고는 필사적으로 헤엄치기 시작한다. ……

     

    이번에 소개할 고수는 일본 검술 유파 중 최고의 명가로 일컬어지는 일도류(一刀流)의 시조입니다. 그는 평생 서른세 번의 진검 승부에서 57명을 베었고, 목검 승부로는 67명을 제압한 실전의 대가입니다. 바로 이토 잇토사이 가게히사(伊藤一刀齊景久, 1560~1653?)입니다.

     

     

    만화 ‘배가본드’에 등장하는 잇토사이.

     

    일본 에도 막부 시대 쇼군 가문의 검술 사범으로는 두 개의 유파가 있는데 하나는 야규류(柳生流)이고 다른 하나는 일도류입니다. 일도류는 현대 검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유파로 에도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까지 주류 유파로 명성을 떨친 뼈대 있는 문중이지요.

     

    일도류의 시조 이토 잇토사이 가게히사는 정치범을 수용하던 유형지인 이즈(伊豆)의 한 섬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주군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사인 로닌(流人)이었다고 합니다. 척박한 섬에서 자란 잇토사이는 어릴 적부터 근골이 장대하고 성격도 거칠어 별명이 오니야샤(鬼夜叉) 입니다.

     

    열네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마침내 섬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는 작은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갑니다. 도중에 배가 거친 풍랑에 전복되지만 그는 나무 조각을 붙들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탈출에 성공하지요.

     

    미시마(三島) 신사에 몸을 의탁하던 잇토사이는 열다섯 살 때 도다류(富田流)의 한 검객과 시합을 하여 승리를 거둡니다. 이 시합을 입회한 신관은 잇토사이의 놀라운 힘과 기개에 감복하여 그에게 무사 수행을 장려하며 칼 한 자루를 선물합니다. 이 칼은 명검의 산지로 이름 높던 비젠(備前)의 장인 이치몬지(一文子)가 만든 것이지요.  잇토사이의 명검과 관련하여 일도류 유파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재미난 일화가 있습니다.

     

     

    미시마 신사

     

    잇토사이가 머물던 신관의 집에 어느 날 밤 수십 명의 도적떼가 쳐들어옵니다. 싸움이라면 어릴 적부터 이골이 난 잇토사이, 조금도 겁먹지 않고 신관이 준 칼을 빼어 들고 맞서 순식간에 일곱 명을 참살합니다. 그의 무서운 기세에 주눅이 든 도적들은 슬금슬금 도망을 치고 그 중 한 명이 다급한 나머지 항아리 뒤에 몸을 숨기는군요. 이를 본 잇토사이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항아리를 향해 칼을 날려 도적을 항아리와 함께 베어 버렸답니다.

     

    이런 연유로 이치몬지의 명검은 가메와리도(甁割刀)라고 불리며, 이후 일도류 유파의 정통 계승자에게 대대로 전해집니다. 가메와리도란 항아리를 벤 칼이라는 뜻이지요.

     

    이후 잇토사이는 미시마 신사를 떠나 에도로 가서 중조류(中條流)의 달인인 가네마키 지사이(鐘捲自齊)의 제자로 들어갑니다. 5년 뒤에는 스승과 겨뤄 이겨 중조류의 비전을 전수받고는 독립합니다. 이후 그는 가마쿠라의 쓰루오카 하치만 신궁에 참배하여 몽상검(夢想劍)의 묘리를 깨닫게 됩니다. 몽상검이란 등 뒤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무의식중에 베어 버릴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는 군요.

     

    이후 잇토사이는 강력한 실전 검술로 검명을 날리는데 특히 호샤토라는 검기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호샤토란 한 명이 여러 명의 적을 상대하는 기술을 말하며, 일곱 개의 본(本)이 전해집니다.

     

    잇토사이는 제자들을 엄격하게 훈련시킨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후계자인 오노 타다아키가 쇼균가의 검술 사범으로 발탁되어 일도류는 천하제일 유파로 우뚝 서게 됩니다.

     

     

    비젠이치몬지의 우아한 자태. 주로 무로마치시대에 생산된 명검으로 날의 휨이 큰 타치입니다.